본문 바로가기
일상

조지 오웰

by 잼크 2022. 7. 20.
반응형

조지 오웰

조지 오웰(영어: 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에릭 아서 블레어(영어: 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는 인도 제국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명료한 문체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민주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한 것으로 이름나고 있다. 조지 오웰의 작품들은 오늘날에도 대중문화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 조지 오웰이 만든 신조어인 빅 브라더, 사상경찰(Thought Police), 신어, 이중사고(doublethink)와 같은 언어와 그가 예견한 냉전 체제 등은 여전히 영향력 있는 개념이다. 오웰은 문학 평론, 시, 평론, 소설과 같은 작품을 남겼으며, 《동물 농장》(1945년)과 《1984년》(1949년)으로 특히 유명하다. 논픽션 작품 중에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년), 《카탈루냐 찬가》(1938년) 등이 있다. 2008년 《타임스》는 1945년 이후 위대한 영국 작가 50선에 2위로 조지 오웰을 꼽았다. 민주사회주의자 중 한명이다. 조지 오웰은 1950년 1월 21일에 오랫동안 앓아온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릭 아서 블레어는 1903년 6월 25일에 당시 영국의 식민지이던 영국령 인도의 벵골(오늘날 비하르 주)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찰스 블레어는 부유한 젠트라로 토머스 페인 백작의 딸과 결혼하였다. 그의 주요 수입원은 자메이카의 플랜테이션 농장이었다. 할아버지 토머스 리처드 아서 블레어는 성직자이었다. 젠트라 신분은 세대를 걸쳐 상속되었으나 제물은 그렇지 못하여 에릭은 자기 집안을 "상류 중산층의 하층"이라고 표현하였다. 에릭의 아버지인 리처드 월 머 슬리 블레어(Richard Walmesley Blair)는 인도 식민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이다 블레어(Ida Mabel Blair)는 에릭이 두 살이 되던 해 그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생가는 비하르주의 역사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에릭은 어머니 인다는 것과 함께 옥스퍼드셔의 헨리온템스에 정착하였다. 아버지가 3개월간 영국에 돌아왔던 1907년을 제외하면 1912년까지 가족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에릭에게는 마조리라는 이름의 누나와 에이브릴이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1905년에 쓰인 어머니의 일기에는 활발한 사회 활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보인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에릭의 가족은 옥스퍼드셔의 쉼 레이크로 이주하였다. 에릭은 여기서 버디 컴 집안과 어울렸는데 특히 딸인 제신아 버디 컴(Jacintha Buddicom)과 친하게 지냈다. 이들의 우정은 이후로도 계속하여 이어졌고, 1974년 제신 타는 이때의 일을 적은 《에릭과 우리들》을 출간하였다. 영국에 돌아온 에릭 블레어는 가족이 사는 사우스 월드에 자리 잡았다. 그는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 옛 은사인 고유가 있는 케임브리지를 방문하였다. 1927년 에릭 블레어는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가족과 안면이 있던 시인 로스 피터가 숙소를 잡는 것을 도와주었고, 블레어는 그 해 말 노팅힐의 포르토벨로 가에 방을 얻었다. 이 집에는 조지 오웰을 기념하는 블루 플래카가 부착되어 있다. 블레어의 어머니는 로스 피터가 이사를 도운 것에 적잖이 안심하였고, 피터는 블레어가 시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걸 지적하며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을 써 보라고 권유하였다. 에릭 블레어는 경험을 쌓기 위해 이스트엔드 오브 런던의 생활상을 살폈다. 에릭 블레어는 이스트엔드 오브 런던의 밑바닥 삶을 서술한 《밑바닥 사람들》을 출간한 잭 런던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가 가난한 계층의 사람인 양 차려입고서 이스트런던의 라임하우스 코스 웨이에 있는 하숙집을 빌렸다. 에릭 블레어는 이 시기 겪은 일을 정리하여 1931년 첫 수필 〈스파이크〉를 발표하였다. 1928년 초 그는 파리로 이주하여 노동자들의 밀집 거주 지역이었던 파리 5구의 누도 포드(Rue du Pot-de-Fer)에 폐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이모 젤리 리무진이 파리에 살고 있어서 필요한 사회적 지원과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에릭 블레어는 《버마 시절》의 초고를 쓰며 작가 생활을 했지만, 벌이가 될 만한 것은 못되었다. 에릭 블레어는 프랑스의 국제 공산당 잡지인 《몰드》에 투고하면서 작가로서 보다는 언론인으로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에릭 블레어가 전업 작가로서 쓴 첫 글인 〈영국의 관료 체제〉(프랑스어: La Censure en Angleterre)는 1928년 10월 6일 실렸다. 영어로 된 첫 글은 1928년 12월 29일 《지 케이스 위클리》(G.K.'s Weekly)에 실린 〈서푼짜리 신문〉(A Farthing[주해 1] Newspaper)이었다. 에릭 블레어는 프랑스의 좌파 잡지인 《르 프로그레 시비코》(Le Progès Civique, 진보 시민)에 정기적으로 투고하여 런던의 부랑자와 거지의 삶을 다룬 글들을 썼다. 밑바닥 삶에 대한 그의 이런 관심은 훗날 《카탈로니아 찬가》가 집필되기 전까지 에릭 블레어의 주된 평론 주제였다.1929년 2월 에릭 블레어는 중병이 걸려 파리 14구의 코신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 병원은 의대 학생의 교육을 위해 운영되어 무료로 진료를 하였다. 당시의 경험은 1946년에 발표된 〈빈자가 죽는 법〉(How the Poor Die)의 바탕이 되었다. 그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이 하숙방에 도둑이 들어 가진 돈을 모두 훔쳤다. 블레어는 생계를 위해 뤼드리볼리 가의 호텔에서 접시를 닦아야 했다. 1933년 출간 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는 그의 접시닦이 생활, 구빈원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밑바닥 생활을 거치면서 에릭 블레어는 상류층의 자본가들은 프롤레타리아의 폭동을 두려워 할 뿐, 그들의 생활 개선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보잘 것 없는 노동자들에 대한 밑바닥을 관통하는 본능은 단지 폭도에 대한 공포이다. 폭도는 저급한 동물이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생긴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도 없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29년 8월 에릭 블레어는 《뉴 아델피》에 〈스파이크〉를 투고하였다. 《뉴 아델피》는 대중적 사회주의를 불러일으킨 주요 잡지 중 하나였으며 1935년까지의 오웰의 글 대부분이 이 잡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1929년 12월 에릭 블레어는 2년 여간의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부모들이 살고 있는 사우스월드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은 지역에서 평판이 좋았고 여동생 에이브릴은 찻집을 운영하였다. 그는 지역의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았고, 그 가운데에는 사우스월드의 세인트펠릭스 여학교의 체육 교사였던 브랜다 샐켈드도 있었다. 성공회 신부의 딸이었던 그녀는 블레어의 청혼을 거절하기는 하였지만, 친구로 남아 여러 해 동안 주기적으로 편지를 주고 받았다.1930년 블레어는 여동생 마조리와 그녀의 남편이자 어릴 때부터 격의없이 알고지내던 험프리 데킨과 함께 리즈의 브램리에 잠시 머물렀다. 블레어는 여기서 《뉴 아델피》에 투고를 하며 사우스월드의 개인 교사로 생활하였다. 당시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는 훗날 철학자가 된 리처드 스텐리 피터스가 있었다.이 즈음 블레어의 생활은 이중적이었다. 사우스월드 블레어 가의 아들인 에릭은 예의바르고 별다른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당시 필명으로 사용한 버튼은 런던의 이스트앤드 싸구려 숙소와 길바닥을 거닐고 켄트의 들판에서 홉을 주었다.그는 해변에서 그림을 그리고 수영을 하며 지내다 훗날 그의 경력에 영향을 미친 마블 피어즈와 프란시스 피어즈를 만나게 되었다. 일년 뒤 블레어는 이들을 런던에서 다시 만났고, 그들의 친구인 막스 플로우먼과도 자주 만났다. 또한 블레어는 루스 피터와 리처드 피터의 집에서도 자주 머물렀는데, 그 덕에 블레어의 간헐적인 밑바닥 생활에는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 블레어의 하루 임금은 하프 크라운(8분의 1 파운드) 정도였다.


반응형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테리오파지 알아보는 시간  (0) 2022.07.21
안드로메다 은하  (0) 2022.07.20
큰고래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0) 2022.07.19
기술 변화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0) 2022.07.19
우주 탐사 단어의 뜻  (0) 2022.07.1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