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탐사
우주 탐사(宇宙探査, space exploration)란 우주 공간을 탐사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우주의 탐사는 유인 우주 비행(human spaceflight)과 무인 우주선(robotic spacecraft)으로 수행한다. 반면, 우주에 있는 천체를 관찰하는 것은 천문학이라고 한다. 20세기에 개발된 거대한 액체연료 로켓 엔진이 실제적인 우주 탐사를 시작한 지 약 20년 후, 일회용 우주 비행체는 우주왕복선 계획(Space Shuttle program)같이 재사용할 수 있게 바뀌었고, 우주 경쟁은 국제 우주 정거장(International Space Station) 같은 협력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이후 민간업체들이 우주여행(space tourism)의 판촉과 달의 민간 우주 탐사(GLXP)를 시작하였다. 2003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성공적으로 유인 우주 비행을 시작하였고, 일본과 인도 또한 유인 우주 비행 계획을 세웠다. 우주 탐사를 가능하게 했다. 우주 탐사는 종종 냉전 같은 지정학적 경쟁의 대리전 성격을 띠기도 했다. 초기의 우주 탐사는 미국과 소비에트연방 간의 "우주 경쟁"에 의해 추진되었다.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려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 소비에트연방이 발사하였다. 1969년 7월 20일에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최초로 유인 달착륙에 성공한 것을 종종 우주 탐사의 초기(初期) 경계로 간주한다. 처음에는 소비에트연방이 모든 면에서 주도하였다. 그 예로는 1957년에 최초로 생명체(우주개 라이카)를 지구 궤도에 쏘아 올린 것과 1961년에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보스토크 1호에 탑승한 유리 가가린), 1965년에 최초의 우주 유영(알렉세이 레오노프), 1966년에 지구 외의 천체(달)에 최초의 자동 착륙 성공(루나 9호), 1971년 최초로 발사한 우주 정거장(살류트 1호) 등이 있다. 우주로의 첫걸음은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의 폰 브라운 등의 여러 과학자가 개발한 탄도 비행체인 V-2 로켓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연합군은 독일 과학자들과 노획한 V-2 로켓을 군사 및 민간 연구를 위해 이용하였다. 첫 번째 과학 우주 탐사는 1946년 5월 10일 미국에 의해 수행된 우주 복사(cosmic radiation) 실험이었다.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첫 번째 사진은 초파리들을 올려보낸 첫 번째 동물실험과 같은 해인 1947년에 촬영되었다. 두 실험은 미국과 그들의 독일인 고문들에 의해 발사한 V-2에 의해 수행되었다. 일련의 탄도 비행 실험은 우주에서 매우 짧은 시간 동안만 가능하였다. 최초로 성공한 궤도 비행은 1957년 10월 4일에 발사된 소련의 무인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Sputnik, 영어로 "Satellite")이다. "스푸트니크(Спутник)"란 러시아어로 "여행의 동반자"란 뜻이다.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는 소련의 발렌티나 테레시코바였다. 그녀는 1963년 6월 보스토크 6호에 탑승하여 지구 궤도를 48회 돌았다. 보스토크 1호의 성공에 자극받은 미국은 개 앨런 셰퍼드를 태운 머큐리-빨간색 스톤 3호(Mercury-Redstone 3)를 발사해 탄도 비행에 성공했고, 1962년 2월 20일 미국 최초의 우주비행사 존 글렌을 태운 머큐리-아틀라스 6호(Mercury-Atlas 6)를 발사해 첫 유인 궤도 비행을 실시하였다. 1960년대 달 탐험에 주력하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 개발 계획은 1970년대에 들어와 우주의 실생활 이용과 태양계 행성의 우주선에 의한 무인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1972년 아폴로 계획이 끝나면서 미국의 유인 달 탐험 계획은 일단 중지되었고, 그 대신에 다수의 실용적 성격을 가진 인공위성, 예를 들어 통신·기상·자원탐사 등의 위성과 천체와 태양 관측용의 과학위성이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려졌다. 미국은 행성 탐사를 위하여 마리너·파이어니어·바이킹·보이저 등의 우주선을 수성·금성·화성·목성·토성 등에 쏘아 보내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었다. 파이어니어, 바이킹, 보이저 등의 미션을 성공시킨 미국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행성 탐사를 많이 하였다. 미국의 탐사기는 언제나 행성의 뛰어난 데이터를 입수해 왔다. 1978년에 발사된 마지막 금성 탐사기 파이어니어 비너스로부터 10년 이상이나 지난 1989년에야 NASA의 금성 탐사기 마젤란이 발사되었다. 목성 탐사는 1972년 3월 2일 발사된 파이어니어 10호에 의해 시작된다. 파이어니어 10호는 1973년 12월 3일 목성에 접근하여 사진을 전송하였다. 그 이후로는 보이저에 의한 탐사가 이어진다. 보이저에 의해 그 표면의 모습이 포착된 목성에도 다시 탐사기 갈릴레오호가 발사된다. 정밀한 센서로 목성의 대기와 목성의 위성을 자세히 조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미항공우주국은 1998년 이온 엔진 우주선 딥 스페이스 1호 무인 탐사선을 발사하였다. 1997년 무인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가 화성에 도착하였으며, 토성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 호가 발사되었다. 패스파인더의 화성 착륙 성공은 1976년 9월의 바이킹 2호에 의한 화성 도착 이후 21년 만의 쾌거였다. 패스파인더는 착륙 후 표면 탐사로봇 차인 '소저너'를 발진시켜 정밀 탐사 활동을 벌였다. 소저너는 예상 수명이 1주일 정도였으나 1개월 이상 화성에서 활동하면서 화성 표면의 기온변화를 관측하고 토양을 분석했다. 그 결과 화성 표면 토양에 의외로 많은 규소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나 알려진 것보다 큰 지각변동을 겪은 것이 확인됐다. 대기와 지표의 상호작용도 심했던 것으로 파악됐고 강한 폭풍과 수증기 같은 휘발성 물질에 의해 지표 모양이 바뀌었다는 증거도 곳곳에서 포착됐다. 또 오래전 화성에도 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단서도 포착됐다. 그러나 가장 기대를 모았던 생명체의 존재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의 탐사로 9,285장이나 되는 사진 자료와 화성 표면 관측자료가 축적돼 화성 연구에 신기원을 이룩했다. 우주 탐사 옹호론(Space advocacy)은 우주에 대한 개발, 우주로의 이민 등 우주 탐사와 이에 필요한 활동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우주 탐사 지지자들은 우주 탐사 연구에 정부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인류가 지구에 계속 머물면 결국 종말뿐이라며 인류에게 우주 탐사가 필수라는 주장이 있다. 자연 자원 부족, 혜성 충돌, 핵전쟁, 전 세계적 전염병 발병 등을 염려한 것이다. 영국의 유명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우주로 흩어져 살지 않더라도 수천 년 후에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하나의 행성에만 모여 사는 생명체에게 있을 수 있는 위험이 너무 많다. 그러나 나는 낙관주의자다. 우리는 별들을 향해 발을 내디딜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우주 탐사를 주장한다. 그들은 우주를 주제로 한 대중 교육에 활발하다. 그리고 민간 항공 우주 산업을 포함한 우주 탐사를 위한 자금 확보를 위해 정부에 로비도 한다. 회원을 모집하고, 모금 프로젝트도 진행하며, 필요한 정보를 회원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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